신앙

수련회 다녀온 후 나눔 글 (6월 5일~7일)

bowstring 2026. 6. 23. 11:24

순장님이 읽어보시고 만들어주신 이미지

 

초청받은 식사 자리

어떤 음식을 또 맛보게 해 주실까 기대감을 하나 하나 쌓아올려봅니다.

그 준비 과정 막바지에 이곳저곳에서의 유혹에 휩싸여

끝없는 논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한껏 지쳐있습니다.

끔찍한 몸상태, 더 늦기전에 식당으로 출발합니다.

식사의 테마는 ‘the 복음’

어떤 음식을 내어주실지 살짝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너무 오랜만의 식사자리라서 그냥 이 자리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생각입니다.

 

Course 1. Amuse-Bouche | 순백의 반전

 

달고기는 뼈를 제거한 순살을 분리해 옅은 소금물에 가볍게 브라이닝하여 미세하게 간을 맞춘

다. 표면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살코기를 진공 포장한 뒤, 46도에 맞춰진 항온 수조에서 20

분간 수비드 조리한다. 단백질이 완전히 수축하지 않고 절반만 익은 미-퀴 상태가 되면 즉시

얼음물에 담가 잔열을 통제하여 차갑게 식힌다. 발효가 잘 진행된 동치미는 고운 면보에 걸러

맑은 육수만 추출해 낸다. 추출한 동치미 육수에 소량의 대두 레시틴을 첨가한 뒤, 서빙 직전

핸드 블렌더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표면에 조밀하고 공기층이 많은 가벼운 폼을 형성하여 달고

기 위에 얹어낸다.

 

하얀 접시위로 하얀 생선살, 그리고 그 위를 덮은 하얀 폼. 시각적인 정보는 극도로 단조롭다.

익히 아는 달고기 특유의 단단하고 촘촘한 살결을 떠올리면 첫 코스 치고 다소 무겁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앞선다. 행여 거품의 형태가 무너질까 조심스레 들어올려 단숨에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혀에 닿는 첫인상은 기포가 타닥거리며 터지는 쨍하고 서늘한 산미다. 지배적인 신맛

사이로 서서히 생선의 텍스처가 밀려오지만, 기대했던 촘촘한 결은 어디에서도 만져지지 않는

다. 오히려 상온에 두어 살짝 녹은 버터처럼 아무런 저항없이 잇몸을 타고 무너지며, 날카로

운 산미의 틈새를 비집고 농밀한 감칠맛이 터져 나온다. 단단하게 쥐고 있던 예상과 편견이

속절없이 부서지며 감각이 멎는다. 완전한 백지상태다.

 

우리는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박광리 목사님이 올라오셨습니다.

“복음이 신앙의 전부입니

다” 시작부터 뭔가 툴툴거리는 느낌으로 특이한 펙폭을 날려주십니다. 오직 은혜에 강조를 둔

말씀이 시작됩니다.

 

로마서 4:4-8

4 일하는 자에게는 품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정당한 대가로 여겨지나

5 일하지 않고도 경건치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집니다.

6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람의 복에 대해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7 “주께서 불법을 용서하시고 죄를 덮어 주시는 사람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으실 사람은 복이 있다.”

 

개인적으로 내 믿음이 어떠한지 보면, 오만과 행동력 사이에서 여러 일들을 겪고 누린 은혜로

남들보다 더 좋은 믿음보다는 ‘나만의 서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믿음이 좋

다기에는 오만이 앞서고 감정적인 대처로 인해 좀 더 믿음이 적은 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수련회를 오기 이전에 갖고 있던 기도 제목은 몇 년간 이 기도 제목으로 고정이 되어있었습니

다.

 

‘물 위에 서는 믿음을 갖게 하셔서 부디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닥친다 하더라도 넘어서면 되는

언덕이 되게 하소서.’

 

내가 무언가를 어떻게 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의 변환을 요청했고 그 힘과 능력을 달라는 기도

였습니다. 여기서 간과했던 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집중된

기도 제목이니까. 어찌 보면 제가 바랐던 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역경을 이겨낸다는 식의

영웅적 서사구조이지 않나 싶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믿음을 구하는 신앙과 은혜를 구하는 신앙의 구분, 더 나아가 하나님께 구

하는 기도와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의 차이는 제가 기존에 장기간 기도하던, 늘 실패하고 좌절

하던 기도 제목을 전면적으로 반박합니다. 무엇을 했기에 더 은혜로웠다는 인식의 위험함을

다시 정의하고 주님의 은혜에 비해 우리의 몸놀림이 얼마나 크든, 노를 잡은 일평생 뱃사공을

한 노인의 옆에 앉은 손녀딸의 노 위에 올려놓은 손 정도가 우리의 믿음의 최대 크기입니다.

주님은 병자에게 오십니다. 의인들을 위해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님조차도 이 수련회를

나오실 때 죄를 안 짓고 나오실 수 없습니다.“ 목사라고 별수 있겠어요? 그저 여러분에게 들

키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주변 사람을 기도할 때 더 긍휼하게 해 주시고 서로에게 더욱 복

음적인 인사라면 ‘사랑합니다.’나 ‘축복합니다.’도 좋으나 ‘니나내나.’ 라고 인사해야 한다 강조

하십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제가 가지고 나온 기도 제목과 어떠한 방향성의 기대감을 확 리프레시 시켜

버리시고는 정말 말씀하셨듯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청량감이 드는 사이사이 비집

고 들어오는 주님의 은혜는 저를 도화지로 만들어, 말씀이 마무리되고 그 사이 우리가 한 거

혹은 주께 요청하여 받은 것으로 기뻐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해야 함으로 자리 잡았습니

다. 기도가 시작되었고 바리바리 싸 들고 왔던 기도 제목과 기대가 사라진 도화지에 기도가

쉬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수련회를 통해 무엇을 주실까 하는 새로운 기대가 다시 차오릅니

다.

 

Course 2. Entrée | 대지의 층

 

제철 뿌리채소는 만돌린을 이용해 1mm 이하의 일정한 두께로 얇게 슬라이스한다. 정제 버터

와 타임 오일을 층층이 발라가며 사각 틀 안에 밀도 있게 쌓아 올린 뒤, 무거운 프레스로 하

중을 가한 상태에서 90도의 오븐에서 3시간 이상 천천히 콩피하여 익혀낸다. 조리가 끝난 채

소는 차갑게 식혀 단단하게 굳힌 뒤 직육면체의 파베 형태로 재단하고, 서빙 직전 뜨거운 팬

에서 겉면만 바삭하게 시어링한다. 대합 조개는 화이트 와인과 샬롯을 넣고 짧게 쪄내어 진한

조개 육수를 추출한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화이트 루에 육수를 부어 점도를 맞추고, 부드

러운 생크림을 더해 벨루테 소스를 완성한다. 접시 중앙에 시어링한 채소 파베를 올리고, 그

주위로 따뜻한 클램 벨루테를 부어 제공한다.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뽀얀 조개 소스 한가운데, 단정히 직각으로 잘린 채소 파베가 마치

견고한 섬처럼 놓여있다. 나이프를 대어 누르자, 시어링 된 바삭한 겉면이 부서짐과 동시에

그 아래로 압착된 수십 겹의 지층들이 칼 끝에 묵직한 저항감을 전한다. 조각을 썰어 소스를

듬뿍 묻혀 입에 넣는다. 진하게 농축된 바다의 감칠맛과 크림의 따뜻한 온기가 입안을 감싸

고, 이가 파베의 깊은 중심부로 파고든 순간 소스의 온기가 닿지 않은 뿌리채소 특유의 서늘

한 온도와 묵직한 흙내음이 불쑥 치고 들어온다. 혀끝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서걱거리며 씹히

는 중심부의 온도 대비가 혀를 자극하며, 오히려 입안을 점령한 소스의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

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소망이 두려운 그대에게’라는 주제로 이서진 목사님이 올라오셔서,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본

인의 경험들을 인용하며 차근차근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1~27

21 예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입니다.

22 귀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번 불 속에 내던지고 물속에도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어떻게든 하실 수 있다면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24 그러자 곧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나를 도와주십시오!”

25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달려오는 것을보시고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듣지 못하게 하고 말 못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령한다! 이 아이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26 더러운 귀신은 소리 지르며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나갔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누워 있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아이가 죽었나 보다.”

27 그때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상황을 비관하는 것보다 소망을 갖는 게 수백 수천 배는 더 어렵습니다. 요는 ‘학습된 무기력’입니다. 켜켜이 쌓여 올라간 작은 대미지들은 꽁꽁 뭉쳐 우리 삶에 뿌리박히고, 우리는 그 상황을 그저 버티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참 오래간 찾아오던 여러 절망이라는 요소들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자기혐오가 툭툭 제 삶 가운데 튀어나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심에도 아이의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느냐?” 아이의 아버지는 대답을 하며 학습된 무기력에 점철되어 있었으나, ‘하실 수 있다면 도와달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 아

버지는 강하게 요청합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나를 도와주십시오!”

 

“믿음이 부족한 나를 도와주십시오!” 이 말씀이 제 마음을 강타합니다. 강한 공감대 형성과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그 사이 주님이 어루만져 주심으로 온기가 올라와 다시금 소망을 갖게 됩니다. 크게는 천국의 소망과 하나님의 최후 승리라는 그 소망을, 작게는 제 당장의 삶에 있

어 온갖 걱정거리와 해결해야 하는 일들로 쉽게 단정지어 버리고는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소망 을 품고 나아가게 되는 시각의 반전을 경험합니다.

 

목사님이 경험하신, 아버지와 함께 나아간 걸음들을 들으며 ‘아, 나도 아버지를 용서하긴 했지만 그 친근함을 경험하기 원한다’고 소망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이 아버지께 전달되기를 강하게 소망하게 됩니다. 그 위로가 우리 안의 굳은 마음을 부수고, 그 지층의 사이사이마다

복음이 스며들어와 소망이 솟아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Course 3. 1st Main | 은혜의 각인

 

대광어의 두툼한 중심부 순살은 베이킹 페이퍼로 빈틈없이 밀봉하는 파피요트 방식으로 오븐

에서 저온 조리한다. 외부의 직접적인 열을 차단하고 갇힌 수분과 증기로만 부드럽게 쪄내어,

생선 본연의 순백색과 수분을 완벽한 도화지 상태로 보존한다. 조리가 끝난 광어 위를 덮을

크러스트는 극도로 얇게 밀어낸 반죽을 수분 없이 구워내어,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질감으로 완성한다. 소스는 화이트 와인과 샬롯 베이스에 사프란을 우려내어 짙은 황금빛을

띠게 하고, 붉은색 사프란 암술대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둔다. 접시 중앙에 파피요트에

서 꺼낸 순백의 광어 살을 놓고 그 위를 바삭한 크러스트로 덮어 시야를 차단한다. 서빙 직

후, 나이프 끝으로 크러스트의 중앙을 타격해 균열을 낸 뒤 그 틈 사이로 뜨거운 사프란 소스

를 붓는다.

 

나이프의 타격에 파삭하고 부서진 크러스트 틈새로 순백색의 광어 살이 드러난다. 그 위로 붉

은 암술대를 품은 황금빛 사프란 소스가 쏟아지며, 파피요트로 촉촉하게 쪄진 광어의 촘촘한

살결 사이사이를 짙은 노을빛으로 빈틈없이 채워낸다.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하던 두툼한 생선

살은 포크를 대는 순간 별다른 저항 없이 부드럽게 무너져 내린다. 소스를 흠뻑 머금은 살점

을 덜어 입에 넣으면, 대광어 특유의 담백하고 묵직한 질감이 혀를 지배적으로 덮는 동시에

사프란 특유의 향미가 감각을 찌르듯 밀려온다. 이가 들어갈 때마다 광어의 눅진한 부드러움

과 바삭하게 부서지는 크러스트의 파편이 선명한 질감의 대비를 이루고, 순백의 도화지 같던

생선살은 어느새 황금빛 소스의 농밀한 풍미로 완벽하게 젖어 든다.

 

우리 목사님이 진행해주신 QT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전에 몰아닥친 여러 일들과 점심을 먹고 난 직후의 나른함으로 많이 졸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내용들이 하나둘 들려오고, 이를 통해 어떠한 QT를 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깨어진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말씀을 나열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그중 띄엄띄엄 생각나던 것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라는 답변이 있습니다.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구약과 신약 전체를 통틀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구약은 신에 대한 스토리를 나열했다면, 신약은 그 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말씀을 포함합니다. 요한복음 20:31 "그러나 이것들이 기록된 목적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믿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31:32-33 "이 언약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던 날, 내가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과는 같지 않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음에도 그들은 내 언약을 깨뜨렸다. 여호와의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그날들 후에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이다.

내가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 속에 주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새 언약은 마음 판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줄곧 묵상하던 고린도후서 3장 3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섬김을 통해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은 단지 개인의 구원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향한 서신(그리스도의 편지)으로서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복음의 짙은 색으로 완벽하게 스며들어 변화된 우리는, 곧 언덕 위에 숨겨지지 않을 동네가 되리라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게 됩니다.

 

Break. Intermezzo | 생동

 

청사과는 착즙 후 미세한 필터에 걸러 불순물이 없는 맑은 과즙만을 추출한다. 신선한 스피어

민트 잎을 과즙에 넣고 저온에서 진공 인퓨징하여 허브의 청량한 향을 입힌 뒤, 산도와 당도

를 교정하여 영하 20도에서 완전히 얼린다. 단단하게 언 베이스는 파코젯으로 미세하게 분쇄

하여 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소르베 형태로 준비한다. 팝핑 캔디는 소르베의 수분에 닿아 서

빙 전 미리 터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을 무향의 식용 카카오버터로 얇게 코팅하여

건조해 둔다. 극저온으로 칠링된 작은 그릇의 바닥에 코팅된 팝핑 캔디를 소량 깔고, 그 위로

청사과 스피어민트 소르베를 얹어낸다.

 

기대하며 쌓아온 기도 제목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은혜를 바라며, 소망을 품지 못하던 내 모습

을 마주한 뒤 다시금 소망을 품어보고, 비록 졸긴 했으나 마음에 각인되는 언약이 무엇인지

다시 인지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뛰놀기 시작합니

다. 분명 몸이 안 좋았고 무거웠으며 체력도 많이 달려서 금방 지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체

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칫 그 무게에 짓눌려 침잠해 버릴 수도 있었던 상

황 속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환기와 정돈의 시간을 가집니다.

 

신앙의 묵상뿐만 아니라, 학업과 업무 과정에서 꽉 막혀 풀리지 않던 일들도 종종 이러한 막

간의 과정을 거치며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Course 4. 2nd Main | 정결한 불꽃

 

가브리살과 얇은 지방층이 등심을 감싸고 있는 버크셔의 뼈 없는 뼈등심 부위를 선별하여, 형

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리용 명주실로 단단히 결속한다. 진공 포장한 고기는 62도의 항온

수조에서 4시간 동안 수비드 조리하여, 중심부 등심의 수분을 보존함과 동시에 겉면의 지방층

과 가브리살을 극도로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건조시킨 타임과 로즈마리를 오븐에서 완전히 태

워 미세한 흑색의 허브 애쉬(Ash)로 분쇄해 둔다. 중심 온도가 목표치에 도달한 고기는 포장

에서 꺼내어 수분을 완벽히 제거한 뒤, 연기가 날 만큼 달궈진 팬에서 겉면만 짧고 강하게 시

어링한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뜨거운 고기 표면에 준비해 둔 허브 애쉬를 빈틈없이 도포

하여, 마치 맹렬한 불꽃에 겉면이 완전히 타버린 듯한 형태를 완성한다. 소스는 화이트 발사

믹 비네거를 약불에서 절반 이하의 부피가 될 때까지 천천히 졸여, 날카로운 산미와 짙은 단

맛이 농축된 투명한 시럽 상태로 곁들인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과 관련하여 임은미 선교사님이 로마서 12장 2절 말씀으로 예배를 인도

하셨습니다.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처음엔 ‘임은미 선교사님, 그분이 맞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중에 “유니~~~~스!!!” 하고 외치시는 그 특유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단번에 기억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그리고 온전하신(완전하신) 뜻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려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에는 넘어지면 빨리 일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넘어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조심합니다. 넘어졌을 때 어디 뼈라도 부러지면 ‘곧 간다’는 얘기가 농담 반 진담반으로 다가오니까요.

 

그런데 젊은 시절,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참소의 영인 마귀는 넘어진 우리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주님과의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말하는 성경 구절 속에, 너무나 감사하지만 살짝 숨겨진 진리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5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으며

 

우리말 성경에는 ‘원한을 품지 않으며’라고 번역되었고, 개역개정에는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영문으로는 “It keeps no record of wrongs”라고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즉 장부에 달아두거나 ‘기록하다’라는 의미의 회계 용어입니다. 잘못을 장부에 기록해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이 은사로 받게 되는 사랑의 속성이지만, 요한일서 4장 8절(“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말씀을 정리하다가 소름이 돋았던 지점이 있습니다. 이 ‘로기조마이’라는 단어가 쓰인 다른 구절을 찾았는데, 로마서 4장에만 무려 11번이 쓰였습니다. 특히 수련회의 포문을 열었던 첫 번째 예배의 말씀, 로마서 4장 8절에 나오는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에서 그 ‘인정하지’가 바로 이 ‘로기조마이’입니다. 그 외에도 ‘의로 여겨진 바’,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등 ‘여기다’라는 의미로 집중적으로 쓰였습니다. 첫 코스에서 나의 영웅적 서사를 깨부수던 그 은혜가, 지금 이곳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참소의 영, 마귀가 이간질을 한다 해도 우리는 대적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고 넘어진 우리를 반드시 일으키실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5절의 “나, 나는 나를 위해 네 죄를 닦아 없애는 자이니 네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말씀과, 미가 7장 19절의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속 깊은 곳에 던져 주소서”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저지른 죄들이 기억나 흑역사라며 침통해할지라도, 거기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다시 나아와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더

욱 뜨겁게 사랑함으로, 더더욱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고 주시는 사랑이자, 우리가 따라가는 사랑의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39편의 말씀을 토대로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지, 더 나아가 주의 높으신

뜻이 얼마나 온전하게 우리를 이끄시는지 깊이 알게 됩니다.

 

믿음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기도하게 됩니다.

 

이때 ‘주여 백(100)창’을 진행하며 기도하는데, 사실 몇 번을 외쳤는지 카운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주여’를 부르짖지만, 그 속으로는 회개하고, 바라고, 어찌할지 구하는 등 눈물로 수많은 기도를 쏟아냈습니다. 그 과정 속에 나를 새롭게 해달라는 기도가 우

선 터져 나왔고, 참 신기하게도 속으로 수많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단 이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삶의 순간들 속에서, 그저 주님을 부르짖는 짧은 순간에도 우리 속으로는 얼마나 깊고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새까맣게 타버린 쓴 잿더미에 정결한 은혜가 부어질 때 새로운 향미로 폭발하듯, 우리의 타버린 과거와 죄 위로 주님의 사랑이 덮일 때 과거의 정죄는 소멸하고 완전히 새롭고 거룩한 향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깊이 경험합니다.

 

Course 5. Dessert | 바위 틈의 시선

 

카카오 함량 70% 이상의 싱글 오리진 다크 초콜릿과 크림을 유화시켜 밀도 높은 무스를 만든

뒤, 표면이 거친 암석 형태의 실리콘 몰드에 채워 급속 냉동한다. 이때 무스 중앙부를 깊게

파내어 좁은 틈을 만들어 둔다. 반건조 무화과는 적포도주에 시나몬과 정향을 더해 끓여낸 뱅

쇼에 장시간 졸여 농밀한 콩포트 상태로 준비한 뒤, 초콜릿 바위의 틈새에 가득 채워 넣는다.

대체 감미료인 이소말트를 고온으로 가열하여 투명하게 녹인 뒤 얇게 굳혀, 역동적으로 휘몰

아치는 거대한 파도 형태의 슈가 장식을 재단한다. 차갑게 칠링된 접시 중앙에 틈을 품은 초

콜릿 바위를 놓고 그 위를 이소말트 파도로 덮어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다. 서빙 직후, 뜨겁게

가열된 뱅쇼 에센스 시럽을 파도 위로 천천히 붓는다. 열기에 의해 화려한 이소말트 파도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바닥으로 자취를 감추고, 굳건한 바위 틈에 숨겨져 있던 짙은 적갈색의 무

화과만이 뱅쇼의 온기를 머금은 채 그 형태를 드러낸다.

 

이승호 목사님이 ‘하나님의 등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출애굽기 33장 12절에서 23

절 말씀을 인용하여 수련회의 마지막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12-23

12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들을 이끌라’고 줄곧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나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고 너는 내게 은총을 입었다’라고 말입니다.

13 주께서 나를 기쁘게 여기신다면 제발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셔서 내가 주를 알게 하시고 계속해서 주께 은총을 입게 해 주십시오. 또 이 민족이 주의 백성들임을 생각해 주십시오.”

14 여호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내가 너를 무사하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16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들이 주께 은총을 입었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들이 지면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겠습니까?”

17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부탁입니다만, 내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19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20 그분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

21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 가까운 곳에 바위가 있으니 그 위에 서 있어라.

22 그러면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 틈새에 두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덮을 것이다.

23 그러고 나서 내가 내 손을 뗄 것이니 너는 내 뒷모습만 보고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던 때에, 산 아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하여 명확한 사인을 주시고 홍해조차도 가르셔서 건너게 하셨음에도 다시금 요구합니다. “자, 일어나서 우리를 앞서서 갈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들에게는 주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당장 눈앞에서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영문 성경에서는 이를 ‘Come, make us gods(신들을 만들어라)’라고 기록합니다. 누구든 상관없고, 여럿이어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이 일로 진노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끊어내려 하셨습니다. (출 32:7) “네가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백성들이 타락했구나.” (출 33: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여차하면 내가 가는 도중에너희를 멸망시킬지 모르니 말이다.”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모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매달립니다. 제발 길을 알려주시고, 이 민족이 주의 백성들임을 생각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 간절함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리시고 함께 하겠다 하시지만, 모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15절에서 “주께서 친히 우리

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라고 더욱 강경하게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하시며, 바위 틈에 모세를 숨기시고 그분의 뒷모습(등)만을보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굳게 붙잡고 있던 기존의 기도 제목이 완전히 새로운 기도로 탈바꿈하는 경험을 합니다.

 

‘어떤 모진 풍파와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물 위에 서는 믿음을 주시면, 나는 이 파도를 능히 넘어서겠습니다.’라고 부르짖던 나의 얄팍한 기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등을 바라보는 믿음을 얻기 원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녹아내립니다. 그곳이 푸른 초장이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든,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더라도 주님의 등을 바라보는 믿음 안에 있다면 그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수련회의 첫 시간, 박광리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나의 그 알량한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얼마나 작디작은 것인지 모른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모진 광풍 가운데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적다고 꾸짖으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의 믿음이 강했다면

그 풍랑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광풍 앞에서, 그 잘난 강한 믿음은 오히려 만용이 되어 배를 파선시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강한 믿음’으로 이 상황을 영웅처럼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상황을 잠재우시고 통치하실 주님을 내 삶의 배에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기적의 파도가 녹아내린 자리에, 굳건한 바위 틈에 숨어 짙게 남겨진 주님의 발자취만을 묵묵히

따르겠다는 결단이 묵직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Course 6. Petit Fours | 전부

 

앞선 모든 코스의 화려한 식기들이 치워지고 텅 빈 식탁이 준비된다. 온도와 시간을 통제하던

주방의 모든 기교와 수식어를 철저히 배제한다. 불에 구워 부풀어 오른 투박하고 거친 밀빵의

단면을 손으로 무심하게 뜯어내어 나무 접시 위에 올린다. 곁들이는 음료 역시 어떠한 가공이

나 배합 없이, 붉은 포도주만을 낡은 잔에 한 모금의 분량으로만 따라내어 빵과 함께 제공한

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기 전,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수련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주님으로부터 다시 멀어지려 하는 나의 관성과 나약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등만 보고 따라오라’ 하셨던 말씀이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곧바로 ‘성찬’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거한다는 그 신비를 빵과 포도주를 통해 직접 목도하게 하신 이 극적인 설계는, 누군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게는 숨이 멎을 듯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기도 제목과 굳게 의지할 말씀까지 얻게 되었음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에 관한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인간의 화려한 자랑이 거둬진 텅 빈 식탁. 그러나 이 투박한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모금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임을 자각하며 다시금 단단해진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합니다.

 

이토록 귀한 영적 미식의 자리로 저를 초청해 주신 주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성껏 이 식탁을 준비하고 섬겨주신 목사님들과 전도사님, 수많은 형제자매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덧붙이며 . 소망수양관 식당에 걸린 그림을 보며 ,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먹기에 저 빵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 하지만 이제는 그 투박한 빵 한 조각이 결코 부족하지 않고 ,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채우고도 차고 넘쳤으리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